응오꾸인(Ngô Quyền)은 드엉럼(지금의 하노이 선떠이 Sơn Tây 지역)에서 태어난 재능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재능을 인정 받아 즈엉딘응에(Dương Đình Nghệ: 931년 사람들을 모아 군대를 만들어 남한나라를 물리쳤다)의 사위가 되었다. 끼우꽁띠인 이라는 장군이 장인을 죽였다는 소식을 들은 드엉럼은 복수를 하기 위해 끼우꽁띠인을 치고자 군대를 이끌었다. 이에 놀란 끼우꽁띠인은 남한(南漢)에 사람을 보내 구조 요청을 했다. 이를 빌미로 남한은 군대를 보내 베트남 민족을 공격했다. 응오꾸인은 이에 남한(南漢) 군대를 맞을 준비를 했다.
베트남 민족을 치러 오는 남한의 병력은 황태자 황타오(유홍조劉弘操)가 이끄는 대규모 군대였다. 남한 군대는 바다를 건너 바익당 강(지금의 하노이 꽝닌지역)을 거슬러 올라왔다. 응오꾸인은 꾀를 내어 사람을 시켜 강어귀 험준한 지역 바닥에 뾰족한 말뚝을 박도록 했다. 남한 군대는 밀물일 때 강 입구에 도착했으며 강에 박힌 말뚝의 존재를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응오꾸인은 군인들을 작은 보트에 실어 전쟁을 개시했다. 공격하면서 동시에 후퇴하며 적들을 말뚝이 박혀있는 곳으로 유인했다. 바닷물이 빠지고 드디어 말뚝들이 솟아 올라왔다. 매복했던 베트남 민족의 군대가 강 양쪽 둑에서 고함을 지르며 기습공격하자 남한 군대는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몰랐다. 배를 돌려 도망치려 했지만 말뚝에 걸려 전진하지도 후진하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베트남 군대는 추격을 계속했고 남한 군대는 병력의 절반 이상을 잃었다. 황타오(유홍조劉弘操)는 이 전투에서 사망했다. 남한의 철저한 패배였다(938년).
다음해 939년 봄 응오뀐은 왕위에 오르며 과거 반랑국의 수도인 꼬로아를 새로운 나라의 수도로 정했다. 이로써 천년 이상 지속되어온 중국 식민지배의 종식을 선언하고 민족의 새로운 독립국가를 세웠다.
응오뀐 사후에 사람들은 그를 기리기 위해 사당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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