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어23 베트남 역사 6: '딘보린' 열 두 군벌 세력을 물리치고 전국을 통일하다 응오뀐왕이 6년을 통치하고 세상을 떠나자 조정은 분열하여 서로 왕좌를 쟁탈하기 위해 싸웠다. 각 세력들은 여러 지방에서 각자 할거하여 전국이 12개의 지역으로 쪼개졌다. 이들은 각자의 정권을 세우고 조정에 충성하지 않았으며 서로 침략하기 바빴다. 이를 후세에 '12 군벌의 난'이라 불렀으며 20년동안 지속되어 마을과 논밭이 파괴되었다. 그 사이 외적들도 공격해오기 시작했다. 이 때, '화르'라는 지방(지금 닌빈성 지아빈 지역)에 딘보린(Đinh Bộ Lĩnh)이라는 의지가 굳고 권모술수에 능한 아이가 살았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딘보린은 소년 시절 어린 물소와 노는 것을 즐겼다. 그리고 종종 또래 아이들을 모아 팔가마를 만들게 하고 자신이 그 위에 올라탔으며, 갈대를 꺾어 전쟁깃발을 만들어 전쟁놀이.. 2020. 4. 21. 베트남 역사 5: 바익당 전투(박당강 전투 938년), 중국 식민지배의 종식 응오꾸인(Ngô Quyền)은 드엉럼(지금의 하노이 선떠이 Sơn Tây 지역)에서 태어난 재능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재능을 인정 받아 즈엉딘응에(Dương Đình Nghệ: 931년 사람들을 모아 군대를 만들어 남한나라를 물리쳤다)의 사위가 되었다. 끼우꽁띠인 이라는 장군이 장인을 죽였다는 소식을 들은 드엉럼은 복수를 하기 위해 끼우꽁띠인을 치고자 군대를 이끌었다. 이에 놀란 끼우꽁띠인은 남한(南漢)에 사람을 보내 구조 요청을 했다. 이를 빌미로 남한은 군대를 보내 베트남 민족을 공격했다. 응오꾸인은 이에 남한(南漢) 군대를 맞을 준비를 했다. 베트남 민족을 치러 오는 남한의 병력은 황태자 황타오(유홍조劉弘操)가 이끄는 대규모 군대였다. 남한 군대는 바다를 건너 바익당 강(지금의 하노이 꽝닌지역)을.. 2020. 4. 21. 베트남 역사 4: 하이바쯩의 궐기, 베트남의 첫 독립 기원후 1세기 어우락 민족(베트남 민족의 시초)들이 식민지배에 있을 때, 지아오찌(교지, 交趾)의 태수인 또딘(소정, 蘇定)은 탐욕스럽고 난폭하기로 유명했다. 지금의 메링현(Mê Linh, 하노이 시에 포함)에는 쯩짝과 쯩니라는 자매가 있었다. 나라를 잃고 열악한 환경에서 자란 이들은 일찍이 침략자인 중국 한나라에 대한 적개심이 강했다. 쯩짝의 남편은 티삭이라는 사람이었는데 티삭은 반란을 준비하는 다른 지도자들과 관련이 있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운나쁘게도 또딘에게 잡혀 사형당했다. 이를 보고 분개한 하이바쯩(Hai Bà Trưng)은 민족에 대한 의무를 다하기 위해 복수하기로 굳게 다짐했다. 기원후 40년 봄, 하이바쯩은 핫강(Hát river) 유역에 있는 핫몬(Hát Môn) 지역에서 궐기했다. 궐기.. 2020. 4. 20. 베트남 역사 3: 천년 넘게 이어진 중국의 식민 지배 남월의 조타(Triệu Đà, 조무제 趙武帝, 기원전 257 - 기원전 137)가 어우락국을 병합한 후 여러 봉건왕조가 어우락국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어우락국은 구나 현같은 작은 행정단위로 쪼개져 한족의 통치를 받았다. 한족들은 어우락 사람들을 시켜 코끼리나 코뿔소 그리고 희귀한 새를 잡아오도록 시켰으며, 어우락 사람들은 바다로 뛰어들어 진주를 캐오거나 거북이를 잡거나 산호를 채취하여 공물로 바쳐야 했다. 그리고 어우락 사람들은 한족의 풍습과 법을 받아들여야 했으며 한문을 배워야 했다. 하지만 어우락 사람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그들의 전통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들은 이빨을 검게 염색했고, 봄이면보트 경기를 했으며, 씨름을 즐기고 민요를 불렀다. 한편 어우락 민족은 중국으로부터 종이 만드는 법, 유.. 2020. 4. 20. 이전 1 2 3 4 5 6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