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세기 말쯤에 리씨 왕조는 날이 갈수록 쇠약해져 갔다. 조정은 백성들의 삶에는 관심이 없었고 백성들의 삶은 피폐해져만 갔다. 북쪽의 (중국) 군대는 수시로 침략하여 상황을 관찰하였다. 왕은 자신의 왕좌를 지키기 위해서 쩐(Trần)가 사람들의 말을 따라야 했다. 조정의 모든 일은 신세인 쩐투도(Trầ Thủ Độ)의 결정에 따라 이루어졌다.
리훼똥(Lý Huệ Tông)은 아들이 없어 왕위를 7살난 딸 리찌우황(Lý Chiêu Hoàng)에게 승계했다. 쩐투도는 리찌우황을 자신의 조카인 쩐까잉(Trần Cảnh)과 결혼시켜, 왕위를 남편에게 양도하도록 했다.(1226년) 이로써 리 왕조는 사라지고 쩐 왕조가 탄생했다.
쩐 왕조 시대에는 전국의 성들이 12개의 행정구역, 로(Lộ)로 나누어졌다. 로는 다시 푸(Phủ), 쩌우(Châu), 휀(Huyện), 싸(Xã) 라는 작은 행정구역으로 쪼게졌으며, 감독관이 각각 파견되었다.
쩐 왕조는 왕위를 일찌감치 아들에게 주는 풍습이 있었다. 왕위를 아들에게 물려준 뒤 선왕은 자신을 태상황이라 일컬으며 여전히 국사에 관여하였다. 또한 큰 종을 궁궐 밖에 놓아 백성들이 간청할 일이나 억울한 일이 있으면 와서 종을 치도록 했다. 궁궐에서 연회가 있을 때는 왕과 신하들이 서로 손잡고 즐겁게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쩐 왕조는 군사력을 키우기 위해 노력했다. 건강하고 힘센 장정들을 뽑아 군대로 편입시키고 평시에는 마을에서 생산에 종사하도록 하면서 전쟁 발발시에는 군대로 복귀해 전투에 참여하게끔 했다.
리 왕조에 있던 유사한 관직들 이외에 쩐 왕조는 하데스(Hà đê Sứ)라는 직책을 두어 강 둑과 제방을 관리하도록 했다. 또한 쿠엔농스(Khyuến nông sứ)는 농업을 장려하고 돈딘스(Đồn đền sứ)는 사람들을 모아 황무지 개간을 시켰다.
이 시대의 본업은 벼농사였다. 얽힌 강물 줄기가 벼농사에 필요한 물을 공급해주었지만 하천의 범람이 큰 문제였다. 이에 하데스라는 관직을 만들어 둑을 쌓고 홍수를 제어하고자 했다. 이 때부터 둑을 쌓고 홍수를 막는 일이 베트남 사람들의 전통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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